거듭남의 은혜 · 여정 되짚어보기
학습 주제: 거듭남
우리의 신앙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회복되어야 할 것은 환경이나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생명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친밀한 관계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거듭남이라는 본질적인 사건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여정에서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해 거듭남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그리고 거듭난 자의 삶에 나타나는 생명의 흔적을 깊이 되돌아봅니다.
거듭남의 시작과 회개
교회를 다닌다고 모두 거듭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성경을 읽으며, 여러 가지 봉사와 헌신에 참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인의 존경받는 지도자이자 학자였던 니고데모에게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3
니고데모는 성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며, 도덕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지식을 더 쌓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착하게 살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이것은 겉모습의 개선이나 종교적 습관의 변화를 넘어선, 위로부터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존재 자체가 새롭게 태어나는 근본적인 생명의 사건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물어야 합니다.
“나는 참으로 거듭났습니까?”
거듭남의 시작에는 '내가 죄인이라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 가장 먼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절망적인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들과 비교해서 몇 가지 잘못을 더 저질렀다는 도덕적 열등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나 내 뜻대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온 근원적인 반역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실 때 비로소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 제 안에는 스스로를 구원할 선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전적인 죄인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파산 선고와 애통함이 마음 밑바닥에서 일어날 때, 비로소 참된 회개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과거의 행동을 잠시 안타까워하고 후회하는 감정적 반응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을 전 인격적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던 삶의 방식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 세상의 가치관과 욕망을 좇아가던 걸음을 멈추는 것입니다.
-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께로 온전히 삶의 중심을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이제 제 뜻대로 살아가는 길을 멈추고 주님께로 돌아갑니다.”
이 진실한 돌이킴이 회개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구원의 은혜
십자가가 지식에서 '마음의 믿음'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회개한 마음 위에 비로소 십자가의 복음이 살아 있는 믿음으로 들어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머리로만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지식적으로 동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의 순간에 일어나는 믿음은 그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 십자가가 바로 나의 죄 때문이었구나.”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바로 나의 죗값을 치르신 대속의 피였구나.”
십자가가 역사 속의 한 사건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사건으로 마음에 깊이 부딪혀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유일한 구원자이자 내 삶의 참된 주인으로 인격적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종교적인 확신이 오히려 구원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엄중한 경고 앞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21-23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많은 권능을 행했던 사람들조차 마지막 날에 주님께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두려운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종교적 열심이나 직분, 겉으로 드러나는 사역의 성과가 구원의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이미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안이한 확신이 참된 회개와 거듭남의 필요성을 가로막는 영적인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은혜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정죄하거나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살리고 구원하기 위해 드러냅니다.
신실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다가 중한 질병을 발견하면 정확하게 알려 주어야 하듯, “괜찮다, 문제없다”며 덮어두는 것은 결코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병의 실체를 알아야 비로소 참된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스스로를 돌아보아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면, 그것을 지금 발견한 것 자체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아직 거듭나지 못했구나.”
“내가 아직 예수님을 마음으로 만나지 못했구나.”
이 사실이 비추어지는 순간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가난함을 정직하게 시인할 때 비로소 참된 구원의 은혜를 간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생명과 믿음의 성장
거듭난 사람에게는 생명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생명이 머무는 자리에는 반드시 생명의 흔적이 드러납니다.
거듭남이란 과거에 일회적으로 영접 기도를 따라 했던 기억이나 지나간 추억에 머물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새 생명을 얻었다면, 그 생명은 그 사람의 내면과 삶 속에서 실제로 호흡하며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 죄에 대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전에는 죄를 가볍게 여기고 즐겼다면, 이제는 작은 죄 앞에서도 마음이 아프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게 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갓난아기가 젖을 사모하듯,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게 됩니다.
-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나 중심의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 다른 지체들을 돌아보고 사랑으로 섬기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교제하게 됩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녀로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하고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연약함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중심에는 분명하게 살아 숨 쉬는 새로운 생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믿음은 날마다 지키고 가꾸어야 합니다
생명은 오늘 숨을 쉬어야 생명입니다.
과거의 은혜에만 안주하지 않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요한복음 15:4에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주님 안에 항상 거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 머물러 있을 때, 거듭난 생명은 자라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